공교롭게도 최근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달리기에 대한 저마다의 얘기를 듣는다. 하루키의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글을 쓰기도 했고, 바로 방금 전에는 모 선배가 직장생활을 달리기에 비유해서 짤막하게 심정을 밝혔다. 그리고 오늘 나는 드디어 왼쪽 무릎 통증을 극복하고 5km 완주에 성공했다. 항상 조금만 뛰면 무릎이 아파서 더 달릴 수 없었는데 오늘은 달랐다. 기뻤다. 런닝머신에 빠알간 5.00이 새겨지는 순간에야 내가 얼마나 달리고 싶었는지 알게 되었다.
별것 아닌 사건이지만 아마 내가 며칠 전에 김연수 씨의 산문집을 읽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영광은 없었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지수가 소개해준 책을 냉큼 서점에서 사서 단숨에 읽었다. 하루키와는 비슷하면서도 또 많이 다른 김연수 씨. 그도 하루키처럼 마라톤을 즐겨한다. 하루키보다는 더 가까운 사람으로 느껴진다. 아무래도 같은 나라 사람이라서 그런건지, 아니면 더 젊어서 그런건지. 어찌됐던 “하루키처럼” 되긴 어려울 것 같은데, “김연수처럼” 되는 것은 가능해 보인다. 예를 들어, 하루키는 100km 슈퍼마라톤과 50대 후반의 트라이애슬론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김연수는 그냥 매일 1시간씩 꼬박꼬박 달리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하루키가 소설을 쓸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 달리기를 시작한 것에 반해, 김연수는 잡지사를 그만두고 시간이 남아돌아서 운동장을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피로란 심리학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식이요법을 하고 근력운동을 한다고 해서 피로를 이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35킬로미터 지점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은 오직 결승점에 들어갔을 때의 일 뿐이다. 옛날에 있었던 일들, 앞으로 해야 할 일들, 약간의 후회, 몇 번의 웃음, 문득 떠오르는 사람 같은 것들은 모두 35킬로미터 이전에서 일어난다. 벽을 만나고 나면 오직 결승점을 생각한 사람만이 결승점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가장 힘든 순간에 희망을 꿈꾸는 일이다.
김연수의 42.195킬로미터는 나의 5킬로미터. 또 재미있었던 대목은 달리기 할 때의 마음을 “고무마음"이라고 묘사한 대목이다. 상당히 위안이 되었다. 집에서 나와서 부터 달리기가 끝날 때 까지.
‘아휴, 또 달려야만 하는 것일까? 정말 달리길 잘했군. 아아아 너무 힘들어. 오늘은 여기서 그만 뛸까? 결국 끝까지 왔군. 달리기를 정말 잘했어.’ 달리기를 하는 사람의 몸과 마음에서는 순간순간 조금 전의 자신을 배반하는 생각들이 오간다. 1시간 동안, 나는 수많은 ‘나’로 분리됐다가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온다.
‘나만 그런게 아니었군’ 하고 위안을 하며 ‘그렇다면 왠지 나도 달릴 수 있을 것 같군’ 하고 생각을 했다. 사실 지금까지 런닝 머신에서 1시간 동안 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일관되게 즐거운 생각을 하면서 달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결론적으로 김연수는 "현재를 사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는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한다.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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